단주 유림 선생
- 1945년 12월 22일 서울 수송동 태고사(현 조계사)에서 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 자유사회건설자연맹, 조선농촌자치연맹중앙연합회, 민우회, 대구자유사,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등이 타계한 아나키스트 동지들을 추모하는 작고동지추도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단주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및 내빈 자격으로 직접 다음의 추도문을 짓고 낭독하였다. -
추 도 문
희(噫)라! 이제는 추억에서밖에 찾아볼 수는 없는 선배여, 제위(諸位)의 영혼은 어느 곳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나이까? 제위(諸位)가 존세(存世)하야 계실때에 꿈에라도 그의 실현을 잊지 아니하옵던, 자유의 사회는 멀지 아니한 장래에 약속되었나이다. 아! 조선의 독립은 왔나이다. 이러한 오늘에 있어서 우리는 더욱 동지제위의 환영을 추억하여 초연(悄然)의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나이다. 아니, 이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기 위하여 제위가 바친 희생과 뿌린 피는 과연 크나이다.
아! 이 위대한 선물을 받게 될때 우리의 혈관은 팽창하여지며 심장은 무한히 격동하여 마지 아니하나이다. 아니 제위의 귀중한 선혈로 쌓인 이 커다란 상아탑을 향하여 우리는 무엇으로써 조례(弔禮)를 올릴지 황홀할 뿐이외다. 있다면 우리의 머리가 수그러지는 부끄러운 빚밖에 없나이다.
아! 슬프다, 동지여! 우리는 희생의 진리를 알았나이다. 파괴는 건설의 주인공인줄을, 그러나 세상은 자아의 생존만을 위한 그릇된 윤리관에서 개인적, 이기적 행동만으로 생존경쟁을 일삼은 와중에서 오로지 동지제위만이 생물의 근본원리이며 인류생활의 진리인 상호부조의 원칙을 굳게 지키며, 이를 저해하려는 모든 대상과 부단의 투쟁을 아끼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이를 위하여 바쳤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동지들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였던가?
아! 동지여! 이러한 부조화를 추상할 때에 우리는 더욱 슬픔의 눈물이 앞을 가리우나이다. 아! 동지여! 제위는 무슨 이유로 사회가 다 오해하고 경원하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나이까? 동지제위가 우리의 안전(眼前)에 계시다면 아연정금(俄然正襟)하고 또한번 묻고자 하나이다.
동지여, 우리 삼천만이 다 한가지 맞이하려는 기쁜 이 날을 불원(不遠)의 장래에 두고 어느 곳으로 종적을 감추었나이까? 동지여, 영혼이 있다면 우리가 한가지 충심으로 망극하는 이 마당에 호응하여 주소서. 우리의 추억의 실마리는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지향 없이 동지의 자취를 자처마지 아니하나이다.
오호라 동지여! 이제는 아무리 찾아도 그의 창백한 환영이나마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의 심경은 더욱 초연(悄然)함을 금치 못하옵나이다. 그러나 동지여! 제위(諸位)의 실체는 보지 못할지라도 제위의 뿌린 거룩한 피가 움이 돋고 꽃이 피어 그의 결실을 만인이 한가지로 수획(收獲)하게 될 금일로부터, 사라진 동지의 진정한 생명은 만인의 행복을 찬연히 빛내고 있나이다.
희(噫)라, 동지여! 상상하건대 동지들의 불타는 투쟁과 생명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 자유의 날이 단축되지 아니하였을 것을 우리는 자각하였나이다. 아니 뜻있는 사람이라면 다 한가지 자인할 것이며, 제위에게 무한한 조의(弔意)를 아끼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나이다. 그러나 동지는 이러한 감사의 조의(弔意)도 아무런 보수도 원치 아니할 것도 우리는 분명하게 아나이다.
희(噫)라, 동지여! 고금을 통하여 진리를 논하는 자의 생활은 참담하였으며, 그의 생명은 박해를 당했나이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를 회고하는 자로서는 한 가지로 아는 바이외다.
희(噫)라! 우리는 동지가 남긴 업적을 굳게 지키며 맹서하여, 조선을 위하여 또는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부단의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려 하나이다. 이것으로만이 동지가 남긴 유지를 계승할 수 있으리라고 자인하여, 만분지일이라도 사라진 동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본연(本然)이라고 생각하나이다.
아! 동지여, 이제는 어느 곳에서 잠자고 있나이까?
자유의 사회는 불원(不遠)하였나이다. 조선의 독립은 왔나이다.
오호라, 동지여! 우리는 동지의 업적을 추앙하여 조위(弔慰)의 눈물을 금치 못하나이다.
단기 4278년 12월 22일
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 유 림
- 1945년 12월 22일 아나키스트들은 작고동지추도회를 가짐으로써 인류평화와 새나라 건설의 각오를 다짐하고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이 때 단주 선생은 작고동지추도회와 조선무정부주의자총연맹의 대표 자격으로 다음의 추도사를 발표하였다. 글은 하기락이 짓고 한하연이 대독하였다. -
추 도 사
작고동지추도회 대표 유림
민족해방의 제단에 목숨바친 순국하신 선열 동지들을 추모하면서 태고사 법당에 지금 흑기 아래에서 함께 싸우던 옛 전우들이 모였습니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 이시영 선생, 기타 여러분의 내빈도 자리를 같이하고 계십니다.
일제 침략의 마수가 만주를 휩쓸고 중국 대륙으로 뻗쳐 나갈 때, 독립운동의 무너진 보루를 다시 구축하고자 노령으로 적진 깊숙이 진입하여 민주전선을 재정비하시려다가, 1932년 11월 17일 대련 수상서에서 불귀의 객이 되신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기수 이회영 동지의 영령이시여!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조직자로서 국제위채사건으로 10년형 복역 중, 1936년 2월 21일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신 신채호 동지의 영령이시여!
일황에 대한 소위 ‘대역사건’으로 사형이 선고되었다가 무기로 감형되어 회목(栃木) 감옥에서 복역 중, 1928년 7월 22일 돌연 의문의 변사체로 천추에 한을 남기고 가신 박문자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동맹체 재만한족총연합회 위원장으로서 백만 교포의 자활자치운동을 지도하시던 중, 1930년 1월 20일 북만주 산시에서 적이 아닌 동족의 흉탄에 쓰러지신 민족의 영웅 김좌진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위원장, 재만한족총연합회 조직선전 겸 농무위원장 등의 중책을 지고 독립운동에 정열을 쏟으시던 중, 1931년 7월 11일 북만주 해림에서 적색분자에게 살해되신 젊은 무사 김종진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원 재만한족총연합회 간부로서 독립운동에 몸바쳐 일하시던 중, 1931년 7월 31일 북만주 석두하자에서 적색분자의 총탄에 쓰러지신 젊은 투사 이준근 동지의 영령이시여!
김야운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원, 재만한족총연합회 간부로서 독립운동에 몸바쳐 일하시다가 돌아가신 김야봉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한족총연합회 위원장으로서 북만주에서 전사하신 우리의 전우 정일우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한족총연합회 간부로서 북만주에서 전사하신 우리의 전우 최동만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원 재만한족총연합회 간부이며 남화한인청년연맹원으로서 왜적과 싸우시다가 상해에서 체포당해, 1936년 4월 서대문 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한을 천추에 남기신 젊은 투사 엄형순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원 남화한인청년연맹원으로서 왜적과 교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잡혀서, 1937년 7월 평양 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천추에 한을 남기고 가신 젊은 사자 오면직 동지의 영령이시여!
북경민국대학 흑기연맹원으로 독립운동에 몸바쳐 일하시다가, 1929년 길림에서 적색분자에게 살해되신 젊은 논객 심용해 동지의 영령이시여!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원 남화한인청년연맹원으로서, 적의 특사 유길명을 처단하고자 폭탄을 안고 적의 진지에 뛰어들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붙잡혀 무기형 복역 중, 1936년 5월 20일 장기(長崎) 감옥에서 순국하신 백정기 동지의 영령이시여!
진우연맹사건에 연좌하시어 일본에서 본국으로 잡혀와 5년형 복역 중, 1937년 7월 29일 대구 감옥에서 돌아가신 김정근 동지의 영령이시여!
박열사건에 연좌하셨다가 다시 진우연맹사건으로 전후 7년간 복역 중 병을 얻어 출옥 후 돌아가신 서동성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기사건으로 1933년 공주 감옥에서 돌아가신 성진호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우연맹원으로서 적지 일본경시청에서 고문으로 돌아가신 오치섭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우연맹원으로서 적지 일본 천엽(千葉) 감옥에서 돌아가신 김택 동지의 영령이시여!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4년 복역 중 병을 얻어 출옥 후, 돌아가신 김정희 동지의 영령이시여!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돌아가신 안봉연 동지의 영령이시여!
관서흑우회원으로서 일하시다가 돌아가신 투사 곽정모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기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1928년 6월 1일 돌아가신 이복원 동지의 영령이시여!
박열사건에 연좌하시고 다시 흑기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1928년 5월 28일 돌아가신 홍진유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기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1932년 10월 5일 돌아가신 한병희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기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돌아가신 이창식 동지의 영령이시여!
흑기연맹원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병을 얻어 출옥 후 돌아가신 곽윤모 동지의 영령이시여!
문예운동사 사건으로 서대문 감옥에서 득병하시고 출옥 후 돌아가신 김학원 동지의 영령이시여!
원산청년회원 본능아연맹원으로서 흑색문단활동을 하시면서 만주 땅을 방랑하시다가 불귀의 객이 되신 이향 동지의 영령이시여!
마산아나키즘 연구회원으로서 일하시다가 돌아가신 김지영, 김지홍 형제분의 영령이시여!
흑우연맹의 동흥노조의 기수로서 혁명운동에 투신하셨다가 적지 동경에서 돌아가신 최낙종 동지의 영령이시여!
건달회 폭력혁명사건으로 일제의 심장부를 무찌르려다가 경시청에서 고문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젊은 사자 이종문 동지의 영령이시여!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원으로서 국제적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시다가 홍콩에서 돌아가신 정해리 동지의 영령이시여!
남화한인청년연맹원 한국청년전지공작대장으로서, 침략군의 후방을 교란시키며 중국 천지에 용맹을 떨치다가 아깝게 전지에서 돌아가신 나월환 동지의 영령이시여!
정화암, 이을규 등과 뜻을 같이하여 상해로 망명하시고 독립운동에 몸바쳐 일하시다가 잡혀와, 공주 감옥에서 돌아가신 진수린 동지의 영령이시여!
유자명과 생사 영욕을 같이하시어 의열단원으로서 국내에 잠입 일제 식민지 착취의 아성인 동척과 식은을 습격, 전사하신 나석주 동지의 영령이시여!
대판(大阪) 조선인민무정부주의자연맹원으로서 일경에게 잡혀간 후 소식이 묘연하신 여류 투사 최선명 동지의 영령이시여!
관서흑우회원 한주청년회원 한주자유노조원으로 평남 경찰부에 잡혀가 고문을 받고 돌아가신 전창섭 동지의 영령이시여!
이 밖에도 여기서 그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지 않은 많은 동지들의 영령이시여!
앞서 가신 동지들이시여, 지금은 호국 호족의 영령으로서 조국의 운명을 지켜 보고 계실 선열 동지들이시여!
지난 4반세기 동안 우리 무정부주의자들이 국내 혹은 해외에서 피흘리며 싸운 당면한 제일차적 투쟁 목표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조국을 해방시켜 민족의 자주권을 회복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과업은 비단 민족의 해방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 각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인류적 투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일체의 타협을 물리치고 대항하는 싸움을 극한적으로 전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홍모(鴻毛)처럼 가벼히 여기며 앞을 다투어 사지(死地)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적의 단두대 앞에서 태연자약하게 조선독립만세! 무정부주의 만세!를 외칠 수 있었으며, 혹은 또 적의 철창여 묶어 청춘을 썩히면서 조국해방의 일념으로 울분을 달랠 수도 있었습니다. 일제는 진정 우리에게 불구대천의 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적에 항거하여 기꺼이 민족해방전선에 참가하는 모든 사상계열의 혁명세력은 모두 우리들의 앞잡이가 되어 제 한몸의 영화와 안락을 누리고자 하는 자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외세에 등을 기대고 민족의 자주성을 망각하는 무리는 그 누구임을 막론하고 우리의 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싸움은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선열 동지 제위의 영령이시여! 기뻐하소서. 우리들의 원수 일제는 마침내 패망하고 이 땅에서 물러갔습니다. 목숨 바쳐 싸우신 동지들의 보람 헛되지 않아 이제 조국의 광복은 약속되었습니다.
동지들의 영위(靈位) 앞에 삼가 고합니다. 1943년 12월 카이로회담에서 미·영·중 3국 수뇌들이 ‘한국민이 겪고 있는 노예적 상황을 주목하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그들의 자유와 독립을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할 것을 확약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들의 항일 투쟁을 고무했으며, 이어서 1945년 7월 전후 질서를 논의한 포츠담회담에서 다시 이 원칙이 확인되었으며 이에 따라 소련도 1945년 8월 대일 선전포고에서 이 원칙을 지킬 것을 천명했습니다.
동지들의 거룩하신 희생이 없었던들, 어찌 인류의 양심과 정의감이 우리의 처지를 이처럼 확실히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며, 또한 무엇으로써 우리가 그들에게 그와 같은 결단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뻐하소서 동지들의 영령이시여!
1945년 8월 15일 일황은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반세기 간에 걸친 비극의 막은 내리어지고 우리들의 제1차적 투쟁 목표가 마침내 달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경향 각지의 철창에 묶여있던 동지들이 속속 풀려나왔습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삼천리 강산에 메아리치는 저 해방의 함성을, 이 기쁨을, 지금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러울 뿐입니다.
선열 동지 제위의 영령들이시여! 지금 우리는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해방의 기쁨을 안고 있습니다. 해방은 또한 부푼 희망과 많은 가능성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 속에는 가시 돋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통일된 민족의 역량에 의한 자주적 독립의 길에는 허다한 난관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 예견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사실은 뜻하지 않았던 북위 38도선이 국토를 양단하고,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민족 자신의 손으로 원수를 이 땅에서 몰아내지 못한 탓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시련인가 합니다. 자유란 남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싸워서 얻어내야 할 과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합니다.
일제가 물러간 뒤를 이어 미·소 양 군정이 남과 북에 실시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각기의 영향력 내지 세력권을 이 땅에 부식하려는 각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여 전후 국제 세력간의 양극적 냉전이 여기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세에 의존하고 편승하여 집권을 노리고 광분하는 반민족적 비민주적 세력들이 민족의 내부에 급속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흡사 반세기전 구한말의 정치 정세를 방불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태가 이대로 진전되는 날이면, 이 강토에 장차 어떤 비극이 다시 연출될 것인지 실로 예측을 불허합니다. 민족의 구심적 의지를 우선 외국 주둔군의 철수와 군정의 철폐로 집중해야 하겠거늘 오히려 그들의 등뒤에 업혀서 자기 세력의 확대에 여념이 없으므로 해서 좌우 양 세력의 대립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난관은 밖에 있다기 보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내부에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통일된 민족의 자주적 독립이란 하나의 공통된 목표 아래 각자의 주의나 주장을 초월하여 우리가 굳게 뭉쳐있다면, 우리 주변의 국제적 정세가 어떻게 변동하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선열 동지 제위의 영령들이시여! 우리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하여 나가야 하겠습니까. 그리하여 동지들이 흘리신 고귀한 피를 헛되게 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선 하루바삐 통일된 민족의 대표 기관이 구성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의 군정으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관은 어디까지나 민주적 자주적 평화적 방식에 따라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이 과업을 이 원칙에 따라 수행하는 것만이 우리 아나키스트의 이념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과업의 수행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영령들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우리들에게 슬기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동지들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꺾이거나 굽히는 일이 없이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부디 편히 쉬시옵소서.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영령들이시여!
1945년 12월 22일
조선무정부주의 총연맹원 일동 삼가 곡함
단주유림선생기념사업회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
단주유림선생기념사업회 (08793)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956, 302호 | 1956, Nambusunhwan-ro, Gwanak-gu, Seoul, Republic of Korea
TEL : 02-838-5296 | 관리자메일 : kaone@kaone.co.kr
COPYRIGHT ⓒ Danju Yurim Memorial Foundation.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ENOUG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