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정치논단


05 김영천의 아나키즘 정치논단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독립운동가 흉상에 관한 고찰과 대책 2

 2018년 3월 1일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제막이 있었다. 나아가 2019년부터 육사 정규 과목에서 ‘6.25전쟁사’는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 ‘스트레스와 건강’ 등이 대신 기초 필수과목이 되었다. 따라서 육사생도는 6.25동란사를 수업받지 않아도 졸업과 임관에 아무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6.25사변은 세계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고 현재도 우리 땅에서 진행형이다. 그런데 이에 관해 공부한 적 없는 장교가, 여전히 대치 상황인 전선에서 총을 들고 있다. 일제와 투쟁하는 과정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숙고했다. 항일 독립운동 이후 남과 북 사이 이념전쟁이 엄연하게 전개 중인데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3년 9월 3일, 육사 교정 내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 및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고 했다. 아울러 그 시기 불가피했던 소련과의 협력을 이유로 독립전쟁의 위업을 폄훼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남루하고 편협한 나라로 떨어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 불과하다. ‘그 시기 불가피했던 소련과의 협력’이라는 그의 주장은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에서 소비에트연방이 연합국으로 참전한 사실만 부각시킬 경우, 한반도 현대사와 독립운동사의 바른 이해는 불가능하다.

 

 1917년 10월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은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으로서, 독립운동 진영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통찰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 직후 전개되고 있는 소비에트체제에 대한 이해 때문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어느 방식으로 혁명을 수행하고 나아가 어떠한 내용의 국가를 건설할 것인지에 관한 방략, 즉 사상이념 문제였다. 육사에 조성된 5인 독립운동가의 이력과 볼세비키혁명 다음 소련에 대한 이들의 인식 및 행로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올바로 조망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못지않은 독립운동가의 활동 역시 우리는 기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항일투사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이념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회영> 조소앙이 1920년 러시아혁명 기념대회를 참관하고 러시아 각지를 돌아본 뒤, 1921년 5월 북경에 도착하자 이회영은 그를 찾았다. 조소앙은 러시아혁명 이후의 참상을 알렸다. “빈부의 차이가 없는 이상사회를 구현한다고 해도, 자유 없는 세상이라면 하루 세끼를 주는 감옥생활과 같다. 독재를 인정하는 인민 지배의 정치는 절대왕정보다 심한 억압정치이니, 새로운 지배계급이 출현할 것이다.”는 조소앙의 증언은, 이회영이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아나키즘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24년 4월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고, 1932년 11월 무장투쟁을 위해 만주로 향하다가 상해 황포강에서 체포된 뒤 고문치사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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