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의 정치논단
단주유림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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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라스 전 총리는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이끌고 선거에 나섰으나 17.8% 득표에 그침으로써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연금수령액 증액 등 포퓰리즘을 다시 내세워 집권을 기도했다. 그러나 대다수 그리스 국민들은 시리자의 대중영합정치가 결국 그리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가 국가 부도 상황이었던 2015년, 국제 채권단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내건 긴축재정을 거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결과 노동자와 사회소외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좌파 연정의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구제금융을 받으며 채권단과 맺었던 조치들은 시리자가 집권하자 무효화되었다. 해고 공무원의 복직과 연금 수령액의 인상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으나 국가경제는 파산되었다. 포퓰리즘 정책은 경제상황의 악화로 이어지고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았다. 연금개혁 의료개혁 긴축재정 등은 국민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이다. 결국 그리스 국민들은 힘들지만 정상국가로 되돌려야겠다고 진로를 설정하였다. 절제에 따른 고통을 인내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리스 여당이 내세운 이러한 시장친화 개혁정책이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를 짧은 시간만에 부활시키고 있다.
그리스 재정위기의 근원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평등주의 좌파정책이었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총리를 두 번 역임하며, 왕정과 군사정부의 부당한 권위주의 유습을 타파하고자 했다. 학교 시험과 직장의 호봉제 폐지를 통해 평등주의를 실현하였다. 학생들끼리 우열을 가리지 않고 경쟁시키지 말자는 교육 논리와, 같은 일을 하면 동일 급료를 받아야 한다는 노동등가성 경제관에 대중은 열광했다. 그런데 경쟁이 없으니 사회 전체가 나태해지고 배움에 열의가 사라졌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으므로 창의력은 발휘되지 못하였다.
복지정책이 확대되었고, 그의 집권 1기에 국가부채는 GDP의 28%에서 89%로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의 숫자는 늘고 권한이 비대해졌으며 정부 지출도 과다하게 팽창했다. 방만한 공기업 운영과 소득을 넘는 소비가 만연하였다. 급기야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도래하자 그리스 경제는 파탄났다. 2009년 10월 그리스 총선에서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안드레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아들인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2010년 5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위원회(EC)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